剩餘之世界

킹 고쥬, 조카테러 후 10년

sOTb 2011. 7. 29. 17:52
조이드....

80년도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제 복제 플라스틱 모델이 판을 치고, 유격도 안 맞는 조악한 러너들을
얄궂은 접착제로 붙여보겠다고 결국 손가락에 반 묻히고 반은 코로 들이마시던 시절,

예를 들자면.....


근데 장난감 세계의 지각변동,
애들 코 묻은 돈이 아닌 돈을 가진 부모를 공략한 듯한,
"태엽 작동 완구, 과학적인 사고에 효과적, 접착제가 필요없는 조립"으로 세상에 나온 조이드 "Zoids"
한참 공룡기에 들어선 어린이뿐만 아니라 공룡기를 졸업한 어린이들도 눈멀게 만드는,
아니, 2010년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애어른들을 유혹하는 악마의 장난감...
당시 조립설명서 뒤편에 있는 생체로봇이니 제국 간 전쟁이니 하는 뭔 말 하는지 모를 이야기들도 왠지 모를 설득력 있었고..

근데 세월이 흘러 90년대 초반...
백화점에 전시되어 있는 이빨호랑이니, 고릴라니 하는 중대형 유닛에서도 관심이 멀어진 지 오래고
굼벵이, 익룡, 브론토사우르스같은 소형 유닛밖에 만져보지 못한 내 손에 떡하고 들어온


갑자기 최강 유닛 킹 고쥬라스....
크.. 크고 아름다워


아마 유년시절 조립식에 대한 졸업을 알리는 부모님의 마지막 배려 정도였을까...
'흐... 흥! 관심 없지만 일단 준거니까 받아주겠어!' 정도랄까...
관심 끊어졌대도 일단 손에 들어왔기에 꽤 하악하악 거리면서 조립하고, 방의 최상단을 장식 했던 거 같습니다.



뭔가 상징적인 녀석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진학으로 서울 올라갈 때도 이 큰 녀석을 데리고 갔었고....
서울에서도 한참이나 방의 최상단을 수호하던 녀석이 10년 만에 부산으로 다시 돌아 올때는...





이런 모습으로....




때는 서기 2000년 정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야 할 2촌 자매의 아들 녀석은 제 방 책꽂이 상단의 녀석을 볼 때마다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렸고,
저는 그게 또 뭐가 재밌었는지 조카 눈앞에 갖다 대고 '캬오오오오오오~' 하는 기믹으로 놀렸으며,
어느날 집에 들어 가 보니 저렇게 되어 있더라는 것 밖에는....



이것은...
3살짜리 어린아이가, 자기 2살 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지금처럼 복각판이 나오지도 않았고, 토미사에서 복각은 없을 거라고 했으며...
일본 옥션이나 한국 수집가들에게 조립품이라도 50만 원 이상에 거래되던 녀석을 가뿐하게 쳐발라버린 사건으로,


동시에 자신을 놀리던 삼촌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주는 동시에 통쾌하게 복수 해버린.....

저는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그저 잉여웹에서 다른 조카테러, 사촌테러 피해자들 사례만 보면서 눈물 닦았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쓰레기 봉지에 담겨, 10년 만에 처참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또 5년을 봉지 속에서 뒹굴고 이사 댕기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자리를 잡아봅니다.

일단 우리 애기 치카 쫌 하고,

 
물기 닦은 오른 다리 대지에 서다.


그리고
팔자에 없는 '조이드에 본드 칠' 하느라, 이미 정신 퇴갤.


근데 있는거 다 끼워맞추고 보니,

어라, 그렇게 나쁘지 않네?
머리에 뿔이 없고,
캐틀링포가 셋다 없고,
엄지손가락이 없고,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없지만... 
그 자체가 박력,

2살짜리는 가뿐하게 울리는 괴성 조심


ㅅㅂ
무기도 없고, 머리, 등 지느러미도 다 벗어지고, 꼬리도 팔도 굳어서, 지대 걷지도 몬하고, 목도 못 가누는 주제에,
다물지도 못하는 입으로 소리만 꽥꽥 지르는구나...


내 트라우마는 언젠가 벗어날 날이 오긋제

조카 너 이새끼 화이팅이다.